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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상식이 통하는.."의 두 얼굴.




(2014/05/26 16:13 블로그 작성)

소위 '상식이 통하는'이라는 형용사구의 등장은 기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삶의 경험에서부터 비롯된 것일 게다. 비상식을 상식으로 여겨야만 하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와 깊이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경험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고 또 '상식이 통하는 교회'를 꿈꾼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선장의 행동과 비상식적인 정부의 대처는, '이게 과연 인간이며 국가인가'라는, 어금니 깨문 통탄을 불러 일으킨다. 생명에 대한 존중, 인간 존엄에 대한 권위,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국민, 삶을 위한 노동, 더불어 사는 사회 등, 너무나도 당연한 듯한 상식들은 통용되지 않으며, '이런 것은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비상식만이 유일한 상식으로 통용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아니, 그럴 시대가 아닌데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상식의 통용을 희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바램이다. 니가 인간이면 나도 인간이고, 니가 국민이면 나도 국민이며, 니 자식이 소중하면 내 자식도 소중하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바램은,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런 마음에서 일각에서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정치적 캐치프레이즈로 가지고 나왔을 거란 생각이다.

그러나 '상식이 통하는'은 상당히 기만적인 용어일 수 있다. 결혼을 준비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결혼에 대한 우리 부모님의 상식과 장인장모님의 상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첫 상견례에서는 '상식적인 선에서' 합의되었지만, 실제적인 준비에 들어가면서는, 우리 부모님은 부모님 주변에서부터 들려오는 결혼에 대한 여러 '상식들'을 기준으로 삼고, 장인장모님은 그 주변에서부터 들려오는 결혼에 대한 여러 '상식들'을 기준으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그 상식은 서로 매치가 되지 않았고, 다행히도 양가에서 서로의 '상식'이 전체의 '상식'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이후에, 최선을 다해 원만한 합의점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여, 필자는 마침내 결혼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항상 같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사실상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아니, '항상 다르다'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자가족들을 앞에 두고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그 최선이 이 최선일 줄은 몰랐다.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지만, 그 눈물이 희생자 가족을 미행하고, 알량한 집시법 적용으로 시민들을 연행하는 눈물일 줄은 몰랐다. 따져 물으면,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오' 하면 될 것이니, 얼마나 손쉬운 것인지 모른다.

'상식이 통하는..'이라는 형용사구는 두 얼굴을 가졌다. 한 얼굴로는 국민들의 상식을 반영하려는 정치인들의 진의일 수 있다. 사실상, 현실성이 무시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상식이 상식으로서 작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현실적 인프라가 처리되어야 할 일이다. 아름다운 백조가 물 위에서 고상한 자태를 뽐내기 위해서는 물 아래에서 열심히 발버둥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식이 상식으로 통용되면 좋겠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기에, 상식이 상식으로서 통용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현실작업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러한 캐치프레이즈를 가져다 쓰려는 정치인들 - 이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 은 이러한 치열한 현실작업들을 토대로 국민들의 상식, 인간으로서의 상식이 통용되게 하려는 진의를 가진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나 '한쪽 얼굴'일 뿐이다. 여기서 '통한다'라고 하는 그 '상식'은 과연 누구의 '상식'인가. 상식이 통한다고는 하는데, 그 상식이 엘리트 일인의 상식이며 대중은 그 일자적 상식을 '받아들여야 함'으로서 성취되는 '상식의 통용'이라면? 이것 참 비상식적이지만, 2014년 대한민국에서는 현저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상식이 통하는'이라는 정치적 캐치프레이즈는 '특정 상식에 의한 폭력'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식에 기반하자면 이런 사람들은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이 '엄벌'에 처해져야 마땅한 이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엄벌에 처해져야 할 이들이 '누구'일 것인가에 대한 상식은, 대통령께서는 가지고 있지 않으신 듯 하다.

구원파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나, 유병언 일가에 너무 많은 이목이 집중되는 것 같다. 아니, 이들에게 너무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같다. 유병언 책임론은 심지어 이데올로기적으로까지 보인다. 아니, 이데올로기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현상금의 양을 봐도 그렇고, 언론 노출의 빈도로 봐도 그러하다. 물론 책임을 물어 정당한 범위 안에서 죄값을 치루게 해야 함은 마땅한 상식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통령께서는 지금 이 시기에 전국민적 분노가 적절한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는 '상식'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듯 하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책임자 범주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상식'은 없으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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