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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연대와 집단 - WCC 논란에 대하여. (1편)
(2014/10/08 13:52 블로그 작성)
김규항의 페이스북 글.
(아이패드로 작성중이라 출처는 나중에 첨부하겠음)
<연대와 집단>
연대란 많은 사람이 제 주체와 개성은 그대로인 채 어떤 의미있는 일을 위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집단은 많은 사람이 제 주체와 개성을 죽이고 하나가 되는 것, 즉 하나의 뇌만 사용하는 것이다. 연대는 고귀하고 강건하지만 집단은 천박하고 허약하다. 인간은 연대의 능력과 집단의 속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다. 종종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하며 특히 '내가 속한 집단'을 연대라고 착각하곤 한다. 나는 지금 연대의 일원인가 집단의 일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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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시간 없는 지금, 이 논쟁적인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어리석게 느껴지지만, 김규항 선생의 짤막한 글을 읽고 나니, 영화 '신세계'에서 박성웅의 대사가 떠오른다. "이거 쥐약이다.. 근데 x발, 나로썬 안 먹을 수가 없네."
가시적인 논쟁의 유의미한 시점은 이미 지났지만, 그래도 들춰보면 금세라도 치열한 논란이 시작될 WCC 문제도 사실 이 '연대'와 '집단' 간의 혼동에서부터 비롯된다. 즉 '연대'의 논리로 보아야 할 것을 '집단'의 논리로 보는 데에서부터 오해가 빚어진다는 말.
무엇보다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것은, NCCK에는 너무나도 순진한 '번역'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주된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던 "일치"라는 단어는 WCC에서 자주 사용하는 'unity'에 대응하여 번역된 단어이다. 영어 단어 unity는 획일화된 '집단'의 논리로도 이해가 가능하고 개성이 훼손되지 않는 '연대'의 논리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를 직역적으로 "일치"라고 번역한 것은, 에큐메니칼 정신을 '종교 통합' 따위로 격하시켜버릴 여지를 너무나도 크게 준 격이 되었다. 매를 스스로 벌었다.
그러나 논의를 위해 우리가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은, 번역이 어찌되었든 이 단어가 원래 지시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겠다. WCC와 NCCK는 정말로 모든 종교들을 '일치'시켜버릴 의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대답은 당연히 NO다. 이 '일치' 문제를 NCCK에서는 여러 자료를 통하여 "다양성 속의 일치"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일치'라는 번역어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이것은 정확히 김규항 선생이 언급한 '연대'의 논리를 지시한다. 김규항 선생이 지적한 '연대', 각자의 개성이 그대로 살아있지만 특정한 필요에 의해 함께 힘을 합치는 '연대'의 기획이야말로 에큐메니칼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이 'unity'라는 단어를 '연대'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일치운동' 대신 '교회연대운동'. 물론 내가 연세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런데 이 '일치'라는 번역어를 빌미로 에큐메니칼 운동을 '집단'의 논리로 이해해버린다면, 뭇사람들의 염려와 마찬가지로 WCC에 가입된 교단들은 모두 종교통합에 이바지하는, 소위 빨갱이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과 같다. 여기에 개신교근본주의의 카톨릭혐오증이 WCC 반대운동의 동력으로 포섭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WCC는 획일화된 기독교 '집단'이 되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교단 간의 차이에 따른 논쟁들을 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부적인 긍정적 논쟁들의 중요성만큼 중요한 것이, 외부적으로 기독교가 기여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발전'이라는 신을 믿고 자연과 인간을 무분별하게 착취하는 데에 혈안이 된 세계에 대해 '하나님의 창조의 고귀성'이라는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것, 권위를 권력으로 둔갑시켜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 없는 세계에 대해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권위'라는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것. 이런 일들을 위해 WCC가 '협의체'로서 조직된 것이다.
물론 '연대'의 또 다른 이름으로 WCC를 거부할 수도 있다. '한기총'이 결국 내부적 다양성을 허락하지 않고 개신교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만 봉사해왔다는 점에서, 몇몇 교단들은 '한기총'을 거부하였다. 이 역시 옳은 일이다. 비슷한 점에서 WCC를 거부할 수 있다. 옳다. 그러나 적어도 '집단'의 관점에서 WCC를 '세계종교통합단체' 따위로 보고 거부하는 건 너무나도 민망한 이야기다. 깔 때는 까더라도 좀 제대로 알고 까자는 것이다. 무턱대고 까다보면 양치기 소년 되는 법이다.
WCC를 둘러싼 기독교에 대한 애정어린 염려에 대해 충분히 논하기 위해서는 몇몇 다른 사례들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제 쥐약은 그만 먹기로 하고, 나중에 2편을 이어서 써야할 듯.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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