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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성취의 도덕? (1)
베버(M. Weber)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서구 근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이 금욕적인 개신교 종교윤리와 가지는 상관관계를 연구하였다. 그는 청교도들 사이에서 자본주의 정신이 발전하게 된 이유를 '소명'(Beruf, calling)이라는 신학적 개념과 연관시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유일한 삶의 방식은 수도원적인 금욕주의를 통해 세상적인 도덕성을 초월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개인의 위치에 따라 부여되는 여러 의무들을 완성시킴을 통해서이다. 바로 그것이 그 사람의 소명인 것이다." 베버는 이러한 세속적 경제활동에 대한 신학적 옹호가 자본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기여라고 평가하였다. 개인들은 근면한 노동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고, 이익의 추구와 부의 축적은 부정적인 함의를 벗게 되었다.
몰트만은 이러한 태도를 청교도들이 그 자녀들에게 했던 다음의 격언으로 요약한다. "너는 세상에 즐거움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놀이가 아닌 노동이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몰트만은 동시에 이러한 종교개혁 신학의 뿌리에 존재하는 일종의 근원적인 패러독스를 감지한다.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 신의 의지 혹은 소명이라는 신학적 해석은 청교도들로 하여금 그 사회의 안전판 혹은 미학적 해방구로서의 기능을 가지던 오락과 놀이와 축제를 폐지시키게 만들었다. 대신 신의 섭리에 기초한 "성취의 도덕"(morality of achievement)이 종교적 구원의 길로 통용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성취의 도덕에서 몰트만은 개신교가 대항하여 극복하려 했던 과거 중세교회의 참회, 면죄부, 자선을 강조하던 "행위로 의롭게 됨"이라는 교리로의 회귀를 발견한다. 개신교에 놀이의 신학이 부재한 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루터의 근본교리에 대한 일종의 망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손호현, <<아름다움과 악>>, 제 1권, 166-167.
comments;
1. 자본주의와 기독교가 '샤방'하게 만나는 해석학을 제공한 베버. 그러나 이러한 '샤방함'에 가리워진 '맘몬'을 우리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2. 여기까지만 보면, 몰트만의 지적은, '그들 안에서의' 내재적 모순을 꼬집는다는 점에서는 타당하겠으나, 만족스러울 만큼 샤프하지는 못하다. 좀 더 기대를 갖고 읽어보아야.
3. "성취의 도덕이 종교적 구원의 길로 통용되기에 이른다"는 표현. 이 '문장 언어'를 보면 어느 누구든지 문제의식을 가질만큼 부정적인데, 이것이 '삶의 언어'로 표현되었을 때에는 이를 온 몸으로 긍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성찰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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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aborated],
Jurgen Moltmann,
Max Weber,
손호현,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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