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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설교] 눅 12:6-7 "참새 그리스도인?"




부천동광교회 DK Teens Worship 설교
2012년3월4일
“참새 그리스도인?”
김성은

누가복음 12장 6-7절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얼마 전에 고등부 어떤 지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요즘 중고등학생들 너무 힘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 얘기 하듯 말하는 것 같은데, 뭐, 결국엔 자기 얘기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제가 중고딩때에는 우리 때가 제일 암울하고 불쌍한 또래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저도 그땐 그랬는데, 여러분도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대학생 되고 사회에 나가보면, 그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냥 ‘공부할 때가 가장 좋은 거다’라는 것이 가슴에 와닿기 시작할 때가 있거든요.

근데 생각해보면 생각해볼수록,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그냥 가볍게 넘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물론 지금의 공부와 시험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 있을 거란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문제도 마냥 호락호락하지만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이 제 마음 가운데 주신 생각이었습니다.

암울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살기 참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뭐, 스마트폰도 나오고 뭔가 더 재미있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세상은 날로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앞날은 잘 보이지 않는데 공부는 여전히 어렵고, 대학 들어가기도 여전히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배우는 건 그게 아닌데 자꾸 ‘스토리’를 만들어내랍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적응하는 문제는 더 이상 가볍게 볼만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 세대에도 여러 문제가 있다보니, 부모님과의 관계와 가정 환경의 문제 역시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에서 벗어나면 다 괜찮아질까요? 쪼금만 더 생각해보자면,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땐 공부가 곧 스펙 싸움이 되어버렸고,취업도 참 어려워졌습니다. 영어는 더 이상 하나의 고유한 문화로서의 ‘언어’가 아닌 획일적인 ‘능력 평가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 뿐일까요? 결혼하면 당장 지낼 집을 마련하기도 어렵고,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그것이 ‘안정적이냐’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정치와 경제 이야기들은 젊은 꿈을 가지고 살기에도 벅찬 우리들에게 벌써부터 ‘체념하는 법’, ‘실망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그나마 있는 ‘우리 나라’, ‘우리 학교’, ‘우리 가정’, ‘우리’에 대한 애정에 상처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환경 문제도 이야기 안 할 수 없죠. 요즘의 날씨의 변화는 그야말로 ‘병든 닭’과 같아 보입니다.

이와 같이, 안정적이지 못한 환경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생각들은 그야말로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어떤 이들에게 어떤 문제는 ‘스릴’로 다가올 수 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또 다른 문제는 그저 ‘스릴’로서 여길 수만은 없는 뼈아픈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일찍이 이런 종류의 어려움을 경험하지 못했던 어른 세대들은 이를 겨우 우리 세대의 ‘노력의 부재’ 문제로 치부하고 맙니다. 그나마 이해해줄 것 같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소위 386 세대들도, ‘우리 때는 매일 데모하러 다니고 해도 자기 앞 길은 다 알아서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한민국의 1%도 되지 않는 ‘성공 신화’가 요즘의 보통 세대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일상’으로서 강요됩니다. 지금 이십대인 88만원 세대의 현실이 그렇고, 88만원 세대의 뒤를 잇는 우리 여러분의 세대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의 1%도 되지 않는 ‘성공 신화’를 모두 다 달성하기 위해 달려나가도록 재촉받고 있는 우리의 세대는, 소위 ‘성공’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가슴을 쭉 펴고 살려고 하지만, 그 속에는 충분히 위로받지 못한 속마음이 우리도 모르게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속마음을 마음껏 드러내기도 힘듭니다. 우리는 결국 시세 얼마에 팔려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시험 성적과 수행평가 결과, 출신 학교와 학벌, 토익점수와 외모 등등의 몇몇 기준에 따라 시세가 매겨지고 팔려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인격적인 사회구조의 현실 앞에, 우리는 겨우 몇백만 중의 한 학생이고, 몇십만 중의 한 수험생이며, 한 명의 재수생이며, 한 명의 백수이며… 그저 한 사람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뭐라고 거대한 사회구조를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요구되는 대로 나 자신을 현실에 맞춰가면서 살아가는 거죠. 이러한 생각과 경험들이 축적될수록, 우리는 우리의 위로받지 못한 속내를 모른 체 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한 것 같습니다.

별반 다르지 않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저도 제 안에서 이런 고민들과 회의적인 생각이 가득하게 되었을 때에, 오늘 읽은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주욱 읽어나가는데,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린다’는 말씀이 제 마음을 때렸습니다. 혼자서는 누군가에게 팔릴 만한 가치조차 가지지 않는, 5분의 2 앗사리온에 팔기에도 거스름돈 내주기 귀찮아서 다섯 마리씩 파는 그 참새의 처지가, 너무 제 모습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거죠. 얼마나 가치가 없었으면 참새 한 마리에 따라 그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두 앗사리온의 가치에 따라 참새의 숫자가 결정될까요? 이런 상황에서 참새 한 마리는 독립적인 자기 자신으로서의 일고의 가치를 가지지 않게 되는 거죠. 근데 오늘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와 교환되는 성적, 능력, 평가, 외모 등이 우리의 가치로 매겨지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참 가슴이 아프죠.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서 멈추시지 않습니다. ‘그래, 세상에서는 너희들을 참새 다섯 마리에 두 앗사리온 하듯이 다룰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절대 그렇지 않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세상에선 그것이 ‘이치’라고, 원래 그런 거라고 이야기하죠. 그래야 학생이 공부하고, 자본이 굴러가고, 사회가 유지된다는 겁니다. 그 안에서 결국 우리는 참새일 뿐이라는 겁니다. 몇 푼 더 받는 참새이거나, 몇 푼 덜 받는 참새이거나.

그러나 ‘진짜로’ 그런가요? 그 다음을 읽어봅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하나님에게 우리는 그저 ‘참새’가 아니라는 겁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았을 때 우리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어떤 쓸모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우리는 ‘참새’보다 더 귀한, 더 소중한 존재라는 겁니다. 다섯 마리의 참새 중 조금 더 낫든지 그렇지 않든지, 하나님 앞에는 그 어느 하나도 잊어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잊어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죄 없는 아들 예수님을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죠. 대신 죽어야 할 예수님은 사형장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외치면서 그 억울함을 토해내십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날 버리실 수 있으십니까?’ 그런데 곧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억울함을 그 쓰린 속으로 삼키시네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나이다.’ 이 억울함을 삼키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이 억울한 상황을 예수님은 받아들이셔야만 했나요? … 사랑! 우리에 대한,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이 죽음으로 인해, 예수님은 어떠한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납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어떠하든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얼마나 대충 살았는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얼마나 가치가 있는 참새든지, 전혀 가치가 없는 참새든지, 앞뒤 재지 않고, 이러저러한 평가를 하지 않고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시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어떤 오해를 가지고 있든,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직 잊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를 그 분의 손으로 붙들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만남이 반가운 겁니다. 어떤 우연한 기회로든 어떤 강제적인 기회로든, 이 자리에서 저와 만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붙드심 속에 일어난 만남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 믿으세요. 이미 믿고 있다시는 분들도, 제대로 믿으세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오늘을 지내고 또 세상을 살아내야지요. 어려운 세상이지만 어쩌겠습니까? 또 살아내야지요. 그러나, 살아갈 때, 두려워하지 맙시다. 두려운 것이 있으십니까? 불안하고 자신 없는 것들이 있으십니까? 두려워하지 맙시다. 적어도,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 있으실 거거든요. 사람들과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지 몰라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다’고 이야기해주고 있거든요. 그 분에게 우리는 참새보다 더 귀한 존재거든요. 두려워하지 맙시다. 참새 다섯 마리가 세상에서는 두 앗사리온에 팔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 참새들이 중요한 존재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는 그 다섯 중 어느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않는답니다.

혹시 우리 중에 우리의 머리털이 몇 개인지 관심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 자신이 예상한 숫자보다 10가닥 정도 차이난다고 해서 아쉬워하실 분 계십니까? 기껏해야 우리는 우리의 머리 모양새나 숱 정도에나 신경 쓸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우리가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큰 관심사가 되고 너무도 가치있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머리털이 몇 개인지 세고 앉아계실만큼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여러분은 많은 참새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V/R,

Kim, Sung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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