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List

2015-03-20

[설교] 계 3:20 "하나님과의 만남으로서의 예배"



부천동광교회 DK Teens Worship 설교
2012년2월12일
“하나님과의 만남으로서의 예배”
김성은


요한계시록 3장 20절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월 이제 둘째 주일이고, 이제 3주만 있으면 3월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개학.. 인가요?ㅋㅋ 우리들 중 누군가는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기도 하는, 그런 3월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신나신가봐요? 저도 대학원 개강을 합니다. 끔찍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단 거죠. ㅋㅋ

3월이 되고 개학을 하면서 종종 보이는 안 좋은 습관들이 있습니다. 보여야 할 인간들이 안 보이는 거죠. 우리 DK Teens 여러분들은 안 그럴거라 생각되지만, 주일 아침에까지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는 인간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때에는 공부하느라 너무 바쁘니까 주일 오전에는 좀 쉬자, 하는 인간들이 있죠.

이런 문제는 ‘예배’가 뭔지 잘 몰라서 생기는 문제인 경우가 많아요. 그냥 와서~ 한두시간 그냥 앉았다가 가는데~ 뭘 굳이 그 시간에, 뭘 굳이 교회에 와서 앉아있냐 싶은 거죠. 어떤 인간들은 인터넷으로 예배보기도 하죠? 그건 예배‘하는’ 게 아니라, 예배를 ‘보는’겁니다잉~! 딱 팔짱끼고 앉아서 참관하는 겁니다잉~! 어쩜 그렇게 ‘예배’를 모를 수 있을까 싶습니다잉~! 아니, 여러분이 매주 교회에 나와서 하는 게 ‘예배’인데, 적어도 ‘예배’가 뭔지는 알고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2월 동안에는 ‘예배’를 우리 예배의 테마로 잡고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월의 ‘관계’ 설교를 잘 들어온 지체들은 잘 이해하시겠지만, ‘예배’는 사실 ‘관계’ 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입니다. 복습해볼까요? 우리는 ‘관계’ 안에 있는 존재들이죠. 관계를 떠나서는 살아볼래야 살아질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학교 친구들이 싫다고 잠수를 타봤자, 그 학교 친구들은 여전히 우리의 ‘생각’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겁니다. 이런 관계는 크게 위로 하나님과의 관계(이게 예배고), 안으로 나 자신과의 관계(정체성), 옆으로 사람과의 관계(사랑의 동역), 또 다른 옆으로 세상과의 관계(다스림)가 있다고 이야기했었죠.

쪼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위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배하고 예배되는 관계인데, 그 예배라는 것은 진~짜로 하는 거고, 이 때, 그러니까 ‘현재’가 되는 모든 순간에 해야 하는 게 예배라고 했죠? 좋아요, 근데, ‘뭐, 대충 알겠는데, 약간 수박 겉핥기 아냐?’뭐 이런 생각이나 느낌을 받았다면, ‘아, 내가 진짜 잘 따라오고 있구나, 난 천잰가봐’ 뭐 이렇게 생각해도 됩니다잉. 사실 겉을 핥았어요잉. 다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거예요잉.

나 자신과의 관계. 정체성. 뭐랬죠? ‘나’라는 존재의 진정한 가치는, 소유가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치,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에서부터 오는 거랬죠.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짜리가 되고 그러는 겁니다잉. 근데 생각해보세요.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랬는데, ‘하나님’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있어요잉.

사람과의 관계. 사랑의 동역인데,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기억나시죠? 그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이 우리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줄 알게 될거라고예수님이 말씀하셨죠. 여기에서도 생각해보세요.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하나님’이랑 연결이 되고 있죠?

세상과의 관계. 우리는 세상을 다스리도록 창조된 존재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 세상을 다스려 나가야 한다고 했었죠. 여기에서도, 나랑 세상과의 관계 이야기를 했어요. 나랑 공부, 나랑 돈, 또 뭐가 있을까요? 나랑 연애, 나랑 컴퓨터, 나랑 핸드폰, 나랑 기타,, 뭐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근데,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다스리는 자’로부르심을 받았대요. 여기에서도 계속 ‘하나님’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있죠?

종합해보면, 이 네 가지 방향의 관계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로 귀결되게 되는 거고, 그렇다면 이 모든 관계는 ‘예배’라는 것 안에 포함되어야 하는 거라는 거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예배해야 하고,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예배해야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관계를 위로 ‘하나님’과 연관시키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단순무식하게 짧게 줄여보자면, ‘관계’란 건 ‘예배’라는 얘깁니다.

그러면, 이제 물어보죠.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란 건 도대체 어떤 겁니까?
지금까지 이야기해왔던 것을 가지고 거꾸로 대답해보자면, 예배는 ‘관계’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배는 ‘만남’입니다. 예배는, ‘만남’입니다.

예배란, 가슴이 좀 찡해지고 안구에 습기가 좀 차고 그랬다고 해서 우리가 진정한 예배를 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찬양할 때 신이 나서 막 뛰고 기도하는데 막 눈물이 나오는데, 그냥 그것만 있다면, 그것은‘예배’가 아니라,‘감정적 동요’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배시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졸거나 딴 짓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예배인 것도 아닙니다. 완전 집중해서 목사님 전도사님 설교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했다고 해서 그게 예배인 것도 아닙니다. 그거야말로 예배를 ‘본’ 거지, 예배를 ‘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뭔가 열심히 막 뭔가를 ‘드리는’ 것만도 예배가 아니고, 막 뭔가를 ‘받는’ 것만도 예배가 아닙니다. 일방적인 것이 아닌, 서로간의 쌍방향의 ‘만남’이 곧 예배입니다.

좀 더 들어가볼까요? 예배라는 건 ‘만남’이라는데, 누가 누구와 만날까요?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죠. 예배란 건 이 ‘차이’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인간의 유한함이라는 ‘차이’에서부터 예배의 가능성이 생기는 거구요, 이 사이의 ‘소통’이 바로 예배라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유한하지만,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거죠. 이 쌍방이 만나는 자리가 바로 예배의 자리라는 겁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만남이 곧 예배입니다.

근데, 이 만남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동시에’ 가운데로 와서 만나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시고, 우리가 거기에 반응하는 만남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듣고 대답하는 만남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만남입니다.

‘사랑’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흔히들 하나님의 사랑을 두고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들 하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잘 표현해준 글이 있어서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믿음이 커지면 하나님의 사랑도 더 커질 줄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묵상이 깊어지면 하나님의 사랑도 더 깊어질 줄 생각한다면 그 또한 오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사랑과 혼동하지 말라. 잘할 때는 후해졌다 실수하면 줄어드는 것은 사람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는 사랑이다. 영원히. 우리가 그 분을 상대하지 않아도. 무시해도. 퇴짜를 놓아도. 멸시해도. 불순종해도. 그분은 변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악이 그 분의 사랑을 줄어들게 할 수 없다. 우리의 선이 그분의 사랑을 더 커지게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매하다고 잃는 것도 아니요 믿음으로 얻어내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한다고 덜 사랑하시고 성공한다고 더 사랑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는 사랑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 사람과 상황과 기분에 따라 시시때때로 바뀌죠. 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지만, 뭐, 인간이란 게 원래 그렇게 가벼운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은 인간 세계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거죠.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을 하고 계신 분이, 오늘 읽은 요한계시록 말씀을 보니까, 우리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고 계신대요. 하나님이 먼저 노크하시죠. 그리고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우리의‘반응’으로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거고, 우리는 그 사랑하심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먼저 사랑하신 데에 대해, 우리는 ‘반응’하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친밀한 손을 먼저 내밀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고그 손을 잡으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요즘 사는 게 어떠신가요? 방학이라 좀 나으려나요? 한국 사회에서 중고딩으로 살아가기, 세상의 갖가지 평가에 시달리는 삶을 살고 계시진 않나요? 우리는 항상 ‘남들에 비해’ 갖는 가치에 따라 평가되죠. 그리고, 우리는, 항상 ‘최고’이지 못한 나의 서글픈 현실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기 마련입니다.

예배를 통해,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우리는 그냥 그렇게 사는 겁니다. ‘내가 60억 인구 중에서 몇 등 하는구나, 절대로 1등은 될 수 없구나, 그래, 나는 걍 이 정돈가보다’ 하고 타협하고 체념하면서 사는 겁니다. 그러나 예배 안에서 무한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한 사람들은, 세상의 갖가지 평가와 등수놀이는 그저 일시적이고 조건적이며 너무나 쉽게 변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예배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일단 그 맛을 제대로 알게 되면, 이것 없이 세상을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도대체 어떻게 사세요? 하나님과의 만남에서부터 오는 평안함 없이 사는 게 가능할 것 같으세요? 예배에서 하나님과 만나고 참 평안함을 얻으셔야죠. 여러분도 좀 사셔야죠.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을 사는 건 너무 싫지 않으세요? 그러면 예배하셔야죠! 예배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나야죠! 안그래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도 팍팍해 죽겠는데, 하나님과의 ‘만남’도 없으면 어떡하세요? 세상의 많은 사람이 그러는 것과 같이, 그냥 자기가 쌓아놓은 자기의 ‘자랑’과 자기의 ‘의’에 의지해서 사실 건가요?성경은 그걸 두고‘우상 숭배’라고 하던데요.‘모래 위에 쌓은 집’이라서,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질 때가 올거라던데요. 예배는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그 만남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생명력을 부여받는 겁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함께 예배하는 DK Teens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노크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문 좀 열어달라구요. 얼굴 좀 보고 이야기좀하자구요.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내 앞에 다 쏟아놓으라구요.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영의 귀를 기울여보세요. 우리는 그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그것에 ‘반응’하면 됩니다. 뻘줌하게 아무 것도 없는데 우리만 혼자 쑈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먼저 이 만남을 시작하셨고, 우리는 그것에 ‘반응’함으로써 이 ‘만남’에 참여하면 됩니다. 거룩한 기대를 가지세요.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대하세요. 그래야 여러분이 삽니다.


V/R,

Kim, Sungeun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