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동광교회 DK Teens 토요기도회 설교
2012년 2월 11일
“혈루증 여인의 믿음”
김성은
마가복음 5:25-34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오늘 마가복음의 말씀에는 혈루증을 앓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간단히 ‘혈루증녀’라고 부르도록 하죠. 매번 ‘혈루증을 12년 동안 앓아왔던 여인’이라고 부르기엔 좀 길잖아요? 이 혈루증녀의 이야기는 사실 마가복음 5장 21절에서부터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기적 사건 중간에 끼어 있는 이야깁니다. 사람들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고 슬퍼하는데, 예수님은 ‘야, 죽은 게 아냐, 자는 거야’라고 하시죠. 그리고 예수님이 뭐라시면서 그 여자아이를 살리시죠? 네, 달리다굼이죠? (쫌 알고 계시는군요.) 암튼, 혈루증녀 이야기는 이 이야기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겁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에게 와서 ‘우리 딸 좀 고쳐주십시오’, ‘그래, 그러마’ 하고 하는 도중에 혈루증녀 사건이 있었던 거고, 혈루증녀를 고쳐준 다음에 바로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거죠. 이런 식의 구성이 어떤 구성인지 학교에서 배우셨나요? ‘액자식 구성’, 맞죠? 암튼, 오늘 우리가 집중해서 살펴볼 본문은 혈루증녀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것만 좀 살펴보도록 하죠.
25절에 보면 이 여자가 12년 동안 병을 앓았다고 나와있어요. 이것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12년 동안 병을 고치려고 계속 노력해 봤지만 아직까지 낫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26절에 보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고 나오고, 또 그 치료를 위해 “가지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다”고 나오죠. 할 수 있는 엄청난 노력은 다 해봤는데도, 그런데도,병은 더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7절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어느 날 이 여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아마도 이 여자가 들은 예수님의 소문은, 그냥 ‘카더라’식의 소문이라기 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실제로 고쳐주셨는데, 이것이 약장수 허풍처럼 소문이 난 것이 아니라, ‘무슨 무슨 병을 앓고 있었던 옆집 누구네 둘째 아들이 죽었다 살아났다더라’, ‘내 친구도 병이 완전히 나았다더라’, ‘진짜로 쩐다더라’, 뭐 이런 식으로, 실제 경험에 기반하여 소문이 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자는 당장에 일어나 가서 무리 가운데 섞여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려고 한 겁니다.
28절의 말씀,“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생각)함일러라.” 라는 기록으로 보아,이 여자는 자신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분명히 병이 나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이 여자는 12년 동안 여러 의사들로부터 여러 치료 방법을 받아왔지만, 계속 안 됐었죠. 오랫동안 한 병으로 병원에 다니다 보면, 거의 의사 수준으로 그 병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죠. 다른 병원에 다른 의사한테 가보니까, 지난 번에 해봤던 검사만 계속 하고,, 뭐 그 약 먹어봤자 안 되는 거 뻔한거고.. 뭐 그런게 훤히 보이는 경지에 다다르는 거죠.
저도 병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수면무호흡증이라는 병이 있는데요, 쉽게 말하면 잘 때 코를 너무 많이 골아서 뇌에 산소 공급이 잘 안 되는, 뭐, 그런, 부끄러운 병입니다. (여러분들을 믿으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겁니다잉~!) 코를 많이 고는데, 제가 대학교 1학년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거든요. 같이 방쓰는 방돌이들이 매일 아침마다 매우 괴로워했고, 이따금씩 혹은 매우 자주, 잠을 편히 못 자는 괴로움을 아주 기냥 직간접적으로 표현했었더랬죠. 그러니까 저는 또 저대로 괴롭고. 내가 너무 긴장을 안하고 자서 그런가 싶어서, 완전 긴장하고 자는데도 안되는 거죠.
그래서 뭐, 어쩌겠습니까. 인터넷을 마구 뒤져서, 코를 안 골게 하는 데에 좋은 머리 각도, 눕는 자세, 베게, 반창고, 음식 등등 하나도 빠짐 없이 다 해봤죠. 전혀 효과 없었죠. 나중에 병원에 가서 ‘수면무호흡증’ 진단을 받으면서, ‘아, 그게 내가 안 골려고 노력해서 안 골아지는 게 아닌 거구나’ 하는 걸 깨달았죠. 병원에서는 수술을 받으라고 합니다. 코 뒤쪽의 숨구멍이랑 목구멍을 절개해서 공기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수술이었죠. 그거 되게 아픕니다. 수술 후 2주일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침 한 번 삼킬 때마다 눈물 한 방울씩 흘리죠. 저는 그 때 사람이 그렇게 많이 침을 삼키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수술하고 나니까, 코를 안 골게 되었습니다. 딱 한 달 동안요. 한 달 지나고 나니까, 다시 곤답디다. (저는 모르죠. 자고 있으니.) 병원에 가서 따졌더니, 수술 다시 제대로 해준답디다. 했죠. 이번엔 목젖까지 절개하면서, 더 크게 수술했습니다. 또 2주동안 침 삼키고 눈물 뚝뚝 흘리고. 이번엔 석 달 갔습니다. 다시 골죠.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아, 그냥 이렇게 살아야 되는구나.’ 수술을 해도 안 되니, 뭔 왠만한 다른 짓을 해도 안될 거라는 ‘믿음’(거의 신앙 수준의)이 생겼습니다.
이 혈루증녀도 그랬을 겁니다. 12년 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해봤지만, 계속 실패를 경험하면서, 여자는 스스로 ‘왠만한’ 치료가 아니고서는 자기가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알고 있었겠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자가 28절에 나온 대로,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 확신은, 이것이 이전에 해왔던 왠만한 것을 ‘넘어서는’ 치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혈루증이라고 하는 병은‘하혈증’이라고도 해서, 월경이 한 달 내내 끊기지 않는 병입니다. 한 달 뿐인게 아니죠. 12년 동안 앓았다고 했으니, 12년 동안 이 혈루증녀는 계속 월경 중이었던 거죠.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주니, 아내는 ‘어우, 완전 싫겠다!’ 그러더군요. 그만큼 이 혈루증녀는 그 자신을 챙기는 것만도 엄청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여성들이 월경을 할 때 ‘부정’하다고 생각했고, 또 ‘부정’한 물건이나 사람을 만지거나 이야기를 나눠도 자기 자신도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혈루증에 걸린 여인을 ‘부정하다’고 하여 가능한한 멀리했을 겁니다. 이런 거 직접 당해본 적 있으세요? ‘더럽다’는 이유로 12년 동안 아무도 만지지도 않고 대화도 안 나누려고 하고. 12년 동안. 여기에서 오는 거절감과 소외감, 상처.. 말로 다 할 수 없을걸요? 그런데, 그 고스란히 남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27절에 나온 대로 ‘무리 가운데 섞이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자칫하면 또 더 큰 상처가 생길지도 모르는데요. 그만큼 이 여자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치료법이 ‘확실한’ 치료법임을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대로, 여자는 치유함을 입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근데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뒤돌아보시면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고 물어보시는 겁니다. 이 여자 입장에서는 좀 당황했을 겁니다. 그냥 손 대고 병 나으면 된 거고, 그러니 이제 집에 가서 잘 살면 되는데.. 어떻게 자신에게서 능력이 빠져 나간 것을 아셨는지, 예수님은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고 계속 물어보십니다. 분명히, 상황은 예수님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에워싸진 상태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고 있었을 것입니다. 31절의 제자들의 대답이 그렇죠. ‘에이, 예수님, 지금 무리가 에워싸면서 다 밀고 있잖아요. 예수님에게 손을 대고 있는 사람이 지금도 대여섯명인데요.’ 그도 그럴 것이, 24절에만 봐도,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라고 나오네요. 많은 사람들이 혈루증녀가 예수님에게 손을 대기 전에도, 손을 대는 순간에도, 그리고 손을 뗀 직후에도,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묻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의 이런 질문은 좀 우리를 황당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데,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정말 몰라서 자기에게서 능력을 빼간 범인을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었을까요? 뭐,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수님이 이 질문을 던진 결과는, 33절에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확실한 치유법’이라 확신했던여자의 “예수님의 옷자락 만지기”작전은 성공한 것 같아 보입니다. 즉, ‘자신’이 생각해낸, ‘자신’의 기발한 치료법이 먹혀들어간 것이죠. 그런데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정색하시고 던지신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은,여자로 하여금자신의 병나음의 근원이‘기발한 치료 방법’과, 그것을 생각해낸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 그 자체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여자에게 있어서는‘자신’과‘치료 방법’이 이 작전의 ‘주인공’이었다면, 예수님은 그 주인공을 똑바로 되돌려 놓으십니다. 이 치유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었다는, 숨겨졌던 ‘진실’을 확인시키시는 겁니다. 그래서 33절과 같이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 그러니까 ‘예수’라는 존재에 의해 병나음을 입은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쭙게 됩니다.”주인공이 ‘예수님’이었다는 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거죠.
바로 이것이 ‘믿음’이죠. 내가 열심히 잘 생각해내서 내가 열심히 잘 했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근원은 그렇게 열심히 잘한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는 거죠. 이걸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33절에,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 즉 ‘예수’라는 존재에 의해 병나음을 입은 일’을 알았답니다. 근데, 이걸 알고보니 자기 생각엔 ‘자기’의 기발한 작전에 의해 병나음을 입었던 걸로 생각했거든요. 누가 주인공이었는지 완전 틀리게 알고 있었거든요. 자기가 주인공인줄 알았거든요. 그러니 두려워하고 떨었던 거죠. 그리고 이제는 누가 주인공인지 확실히 알았으니, 주인공에게 충성해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주인공에게 와서 그 앞에 항복하고 엎드리는 거죠. 모든 사실을 여쭈었다 함은 이제 키가 예수님에게로 넘어갔다는 걸 의미하죠. 그렇다면, 30절에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시던 예수님의 물음은, 실상, “누가 주인공이냐?”라는 물음이며, 이 물음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것을예수님은 요구하고 계시는 거죠.‘내’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실상은 ‘예수님’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보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바로 그 믿음에 대해 예수님이 34절에 언급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혈루증녀의 믿음, 진정한 주인공에 대한 여자의 인정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거죠. 그러면서 주어지는 호칭은 참으로 놀라운데, 예수님은 이 여자를 ‘딸’이라고 칭하고 계십니다. 이런 호칭은 복음서에서 쉽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이 여자의 믿음이 예수님과 여자의 관계를 이어주고 있죠.
요번 고등부 수련회때 대성리에서 어렵게 어렵게 1조를 만나 속초로 가는 길에, 고등부 회장인 승재랑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죠. 그 때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DK Teens에게 이 토요기도회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토요기도회. 여러분의 때에 이런 기도의 자리를 매주 가질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자리를 사모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역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대견해하는데, 하나님은 오죽하실까 싶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는 이 토요기도회가 그저 단순한 ‘치료 방법’에 밖에 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토요기도회에 참여하는 우리가 아무런 ‘믿음’이 없이 참여한다면, 이 자리의 정말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헷갈려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던 사람들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31절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때로는 밀면서 예수님의 옷과 몸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에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나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 내가 나을 것이다. 왜? ‘예수님’의 옷자락이니까!’라는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진 이 여자만이 치유를 경험했음을 우리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체들에게는 오늘의 토요기도회가 그저 수없이 많은 토요기도회 중의 하나라고 여겨질 수 있겠습니다. 혹은 오늘은 분위기가 좀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토요기도회의 주인공은 ‘토요기도회’가 아닌, ‘하나님’입니다. 이 핀트가 흐트러지면 안됩니다.
혹시 이런 하나님의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의 토요기도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킬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가시는 또 하나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실 것이다’, ‘새로운 하나님 경험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하는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고 토요기도회에참여하는 이 어디에 있습니까? 겁 없는 청소년의 때에,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살기로 결정하는 이 시대의 십대 그리스도인들 어디에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공 되심을 온 열방과 영역에서 인정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이들을 찾으십니다.
V/R,
Kim, Sung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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