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동광교회 DK Teens Worship 설교
2012년2월19일
“공동체와의 만남으로서의 예배”
김성은
요한계시록 7장 9-10절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예배. 우리는 2월달에 ‘예배’ 이야기를 하기로 했지요. 기억나시나요? 지난 주에는 뭐 이야기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관계 이야기 쭉 정리했는데, 그 모든 관계가, 뭐 나와 나의 관계라 하더라도, 나와 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굳이 하나님을 끌어들여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관계들 모두가 사실은 ‘예배’여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했더랬죠. 그래서 예배 이야기를 하면서, 예배란 뭐냐, 예배란 ‘만남’이다, 그럼 누구를 만나는 거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예배다, 하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러고 성찬식을 했었죠. 그쵸? 쪼끔씩쪼끔씩 기억나세요?
그렇습니다. 예배란, 결국 ‘하나님과의 만남’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 참석해 있었다 할지라도, 진~짜로 예배한 게 아니라는 거죠. 그냥 단순히 예배를 ‘드림’만 있었다면, 그냥 일방적이기만 했다면, 그건 진짜 예배가 아닌 겁니다잉~
오늘 본문을 보면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은 말씀들이 주욱 나와요. ‘비전’ 찬양 아시나요? 그 가사랑 많이 비슷하죠? 네, ‘비전’ 찬양의 모티브가 된 말씀입니다. 근데, 우리 이번 주에 찬양팀‘예배’ 강의 때에도 얘기했었는데, 비전 찬양 가사의 핵심 메시지가 뭘까요? 라고 물어보면, 가사를 좀 기억해보면서, 열이면 아홉,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 양(예수)께 있다’라고 대답합니다. 근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찬찬히 잘 읽어보면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라는 구절은,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부르는 찬양곡가사입니다. 오히려 ‘비전’ 찬양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요한에게 보여주신 환상(어려운 말로 ‘묵시’)을 기록한 책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날에 어떻게 될지에 대해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을 기록한 책이죠. 요새 신천지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환상을 완전 무식하게 문자 그대로 기계적으로 짜맞추다가 얼추 말이 맞는 것 같으니까, 이만희라는 사람이 ‘이긴 자’가 되고 재림 예수가 되고 그러죠.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서 사과 같고.. 뭐 그러다가 원숭이가 백두산이 되죠? 거의 그런 수준입니다잉. 우리 교회에도 이곳 저곳에 이단과 사이비에 대해 붙어있던데, 여러분 조심하셔야 됩니다잉. 누가 와서 교회 바깥에 다른 데서 성경공부하자고 그러면 따라가면 안돼요~
암튼, 요한계시록에 보니까 이런 일이 있을 거래요. 여러 가지 심판들과 징벌들도 있겠는데,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도저히 셀 수 없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나올 거래요. 그들은 흰 옷을 입었대요. 이건 정말 말 그대로 ‘하얀색 옷’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잉. 그 때에도 사람들은 빨간색, 파란색, 검정색 옷을 입고 있을 거예요. ‘흰 옷’이라는 건 ‘죄씻음 받은 이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시적 표현’, ‘상징적 표현’인거죠? 그리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었대요. 이건 ‘왕’을 맞이하는 백성의 자세입니다잉. 그리고 보좌 앞, 누구의 보좌 앞일까요? 네, 당연히 하나님이죠! 어린 양은 누구일까요? 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선대요.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친대요.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를 모든 압제에서부터 해방시키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장면인 거죠.
근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누가’ 찬양을 하고 있느냐입니다. 그냥 어떤 사람 혼자 찬양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나’ 혼자 찬양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함께’ 모여 ‘함께’ 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예배는 ‘나’ 혼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함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온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라는 찬양이 정말 진지하고 진짜 예배인 이유는, 그들이 진짜로 크게 불렀기 때문도 아니고, 진짜로 아름답게 불렀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이 ‘한 몸’으로 나아왔기 때문에, 이 찬양은 진짜 예배가 되는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씀들은 성경에 무더기로 쌓여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사실 ‘야곱’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받은 이 사람만의 이름이었습니다. 근데, 그 이름이 한 민족의 이름이 되었죠. 하나님이 ‘이스라엘아’ 하고 그 백성들을 부르실 때에, 사실 그 민족은 단 한 명이 아닌 수백, 수천, 수만 명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단 한 명, 곧 그들의 조상 ‘야곱’으로서 존재하는 겁니다.
신약에 보면 ‘지체’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지체’가 뭐냐면, ‘신체 각 부위’를 말합니다. 우리는 한 몸을 이루었대요. 머리는 누굴까요? 예수님이시죠. 저는 팔이고, 누구는 다리고, 누구는 발가락이고,, 뭐 그렇게, 우리가 한 몸을 이룬 존재들이다 라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 명인데, 200명, 300명인데, 근데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공동의 몸을 소유하고 있다, 그게 바로 ‘공동체’인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보면 ‘중고등부 지체 여러분’, 뭐 이러잖아요? 이게 다 그 뜻입니다. 서로를 ‘지체’라고 부르는 건, ‘너와 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몸이다’ 라는 신앙의 고백인 겁니다잉.
로마서 12장(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건 중요하니까 읽어드릴께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걸 자세히 풀어보면, ‘너희 몸’이라고 했어요. 이건 ‘복수’예요. ‘한 명의 몸’이 아니란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 명인 너희들의 몸들을 이러이러한 제물로 드리래요. 어떤 어떤 거냐면, 세 가진데, 1)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 드려라, 2) 거룩한 제물로 드려라, 3)살아있는 제물로 드려라. 라는 거죠. 근데 좀 더 보면, 이 ‘제물’이라는 것은, 문법 상으로 봤을 때 ‘단수’거든요. 그렇다면 ‘하나의 제물’로 드리라는 게 되는 거죠. 그러면 중간은 생략하고, ‘복수’인 ‘너희 몸들’을 ‘단수’인 ‘하나의 제물’로 만들어서 드리라는 게 되는 겁니다잉. 우리는 여럿이지만, 여럿인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겁니다잉. 그게 뭐래요?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죠. 그러나 ‘나’ 혼자만 하나님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로서의 예배가 진짜 예배라는 겁니다. 나 혼자만 은혜받는다고 해서 그게 제대로 된 예배냐, 미안하지만, 혼자만 은혜받고 있는 분들,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우리의 예배에서 소외되어 있는 지체들에 대한 애타는 마음으로, 여러분들에게 엄습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마다 예배를 하죠.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찬양으로 반응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것을 듣고 우리는 삶의 결단을 하고,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로 봉헌을 합니다. 목사님의 축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으로 파송됩니다. 이러한 예배 전체 구조는 결국 하나님과 우리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로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과 거룩한 부담감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뭔가 잘못 예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로서 예배한다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좀 일찍 오셔서, 그날의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 예배를 섬기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세요. 말씀을 전하는 저나, 찬양을 인도하는 찬양팀 가운데, 방송팀과 예배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 가운데에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세요. 그리고 다른 지체들이 들어오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세요. 피곤해 보이는 지체, 뭔 일이 있어보이는 지체,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지체.. 이들이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세요. 예배 시간 내내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속 중보하면서 예배하세요. 이렇게 함께 모여서 진정한 예배를 할 때, 나 혼자에게는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모인 곳이 아니라,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었죠. ‘우리’로서 예배하는 사랑하는 ‘우리’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V/R,
Kim, Sungeun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