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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설교] 시편 62:1-12 "나의 영혼아 잠잠히"



부천동광교회 DK TEENS 고등부 동계수련회 여는 예배
2012년1월 29일
“나의 영혼아 잠잠히”
김성은


시편 62:1-12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우리, 여기, 뭐하러 왔습니까? 은혜 받으러 왔습니까? ‘은혜 받는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사실 이 표현은 상당히 애매한 표현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보상’과 반대말입니다. ‘보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알바하면 알바비를 받죠.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받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뭐 바로 성적에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그게 자신의 실력이 됩니다. 이런건 ‘보상’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한 ‘조건’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당연히 따라오게 되어져 있는 ‘보상’입니다. 이건 은혜가 아닙니다. 그러니, 은혜를 ‘우리가 받는다’는 표현은 한편으로는 말이 되지만, 그러나 ‘은혜’라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받는다’라는 표현으로만 담아내기에는 아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은혜’는 우리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받아내는 게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은혜가 아니라 ‘보상’이고 ‘대가’이겠지요. ‘은혜’는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우리가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을 만한 일을 해서 당연한 걸 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냥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료로, 꽁짜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하나님을 꽤 괜찮은 ‘자판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좋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에 맞는 정도의 기도와 찬양과 예배라는 동전을 차곡차곡 넣고 버튼을 띡 누르면, 하나님은 그 목표를 이루게 해주시는. 작은 건 뭐 그렇다 치더라도, 대학 진학 같은 건 되게 큰 일이니까, 더 열심히 기도해야 된다는 식이죠. 뭐, 상당히 땡기는 이야기이긴 한데, 미안하지만 그런 생각은 하나님을 너무도 잘 모르는 겁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심을 이용해 먹으려는 걸 하나님이 그냥 보고 계시지만은 않죠. 그래서 자주, 하나님은 ‘침묵’하시기도 하시죠. 만일 그 기도제목을 이뤄주면, ‘자기’가 기도한 ‘자기’ 노력에 대한 ‘대가’로 알게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너무나도 불완전하신 분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할 때만 우리를 붙잡고 계시고, 우리가 좀 소홀히 하면 하나님도 소홀해지고. 이건 하나님을 정말로 ‘오해’한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데에 만일 ‘조건’이 있다면, 그 조건은 바로 ‘자격 없음’일 겁니다. 받을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제가 핸드폰을 사기 위해 돈을 냈다면, 저는 새 핸드폰을 받을 자격이 되는 거죠. 근데, 나는 돈을 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새 핸드폰이 주어진다면, 그게 바로 ‘은혜’입니다. 돈을 내지 않았으니, 자격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라는 겁니다.

우리가 자주, 입버릇처럼, ‘은혜를 받는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오묘한 표현을 앞뒤 가리지 않고 써대다보면 이 은혜는 우리가 받아낼 수 있는 것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좀 ‘받아내려고’ 열심히 기도하죠. 뭐, 열심히 기도하는 것, 매우 중요하고, 이 열심이 없으면 과연 그게 진짜 하나님을 만난 것인가 싶기도 할만큼 중요한 겁니다. 근데, 그것만큼 또 중요한 것은 바로 ‘방향성’입니다. 방향은 간데 없이 열심만 있으면, 몸이 고생하죠.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내러’ 온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낼 자격을 채우러 온 거 아닙니다. 우리는 자격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뭔가를 자꾸 주시려고 해요. 뭐죠? 성령이죠. 성령의 충만함이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이 은혜를 누리는 거죠. 이거 하려고 온 겁니다. 하나님 만나고, 성령이 충만하게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이 은혜를 ‘누리러’ 온 겁니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명력’이 있는 겁니다. 뭔가를 ‘하는 것’, ‘일하는 것’에 생명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주어지는 ‘은혜’를 ‘누리는 것’에 우리의 생명력이 있다는 겁니다.

뭐, 오늘 일정으로는 첫 날의 마무리이긴 한데요, 그래도 명색이 Opening Worship이니까, 자, 수련회를 ‘시작’하는 이 마당인데, 여러분과 시 한편을 같이 누려봄으로써 우리의 수련회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시편 62편.

1>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여기까지가 1연입니다. 여기에서 ‘바란다’는 것은 원어상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잠잠히 하나님만을 기다린다는 거죠. 왜냐하면,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건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으면 잠잠히 기다리기가 어렵습니다. 기다리기만 해서 되겠는가, 뭔가라도 해야되지 않을까 고민하는게 우리의 모습이죠. 근데 이 시를 쓴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겠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계속 읽어보죠. 뭔가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 같습니다.

3>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여기서 나오는 ‘너희’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쁜 놈 같죠? 이들은 다윗을 공격하는 대적 세력입니다. 이들은 다윗을 죽이려고 일제히 공격했고, 그걸 언제까지 하려느냐고 한 걸로 보아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다윗을 괴롭혀왔던 거죠. 그 대적들이 다윗을 그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했다네요. 다윗 앞에서는 말로는 축복을 했지만, 뒤로는 이렇게 다윗을 공격하고 있었다네요. 이게 바로 다윗이 처한 상황입니다. 그냥 단순히 평안한 상황이 아니었네요. 계속해서 공격을 당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다음을 읽어보죠.

5>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1,2절에 나오는 내용과 비슷한데, 여기에서는 ‘명령형’으로 쓰여져 있네요. 자기 자신한테, 자기 영혼에게 이런 명령을 하는 거죠. 3,4절의 이런 절박한, 담과 울타리가 나한테 넘어지는 것처럼 일제히 둘러싸여서 공격을 받고 있는 이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다윗의 고백, 근사하지 않으세요?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상황에서, 나는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릴 것’을 결단하는 거죠. 똑같이, 이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냥 멋 모르고 말로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매일의 삶 가운데 계속되는 공격과 고민과 염려가 계속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릴 것’을 스스로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다음을 끝까지 읽어보죠.

8>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9>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여기에서는, 다윗은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환난을 극복한 경험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을 백성들에게 권고하죠.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그 분은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의 더러운 토사물마저도 용인되는 피난처이시지, 그것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꼬치꼬치 따지고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고 의지하고,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고, 혹은 다른 사람의 힘을 능력에 기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입김일 뿐이라는 겁니다. ‘사람’은 우리가 ‘의지’할 존재가 못 된다는 겁니다. 인간의 권력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재산과 재물에도 의지하지 말아라! 그것은 가벼운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권능이 있고 인자하심, 즉 사랑하심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시의 내용이고, 다윗이 환난을 극복하면서 백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수련회.
수련회 기간 동안, 우리의 생각을 좀 내려놓읍시다. 학업에 대한 고민과 긴장, 걱정, 진로에 대한 생각들, 삶의 여러가지 생각들.. 이런 생각들은 당연히 우리로 지금 당장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우리를 몰아가기 쉽지요. 뭐, 마땅히 해야할 일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고등부 여러분,
여기에 온 이상,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읍시다. 우리, 잠잠히, 하나님만을 기다려봅시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사람의 능력이나, 재산이나 재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잠해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잠잠해져봅시다. 뭐, 그렇다고 말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ㅎㅎ

하나님을 기다려봅시다. 잘 안 될겁니다. 그럴 땐,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의 영혼에게 명령해봅시다. 성은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라. 내일에 대한 소망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정말 이런 수련회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잠잠히 기다릴 때에, ‘자격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주실 것이고, 우리는 그 은혜를 누리면 되는 겁니다. 은혜를 누립시다.



V/R,

Kim, Sung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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