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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설교] 로마서 8:31-39 "자신과의 관계: 정체성"



부천동광교회 DK Teens Worship 설교
2012년 1월 15일
“자신과의 관계: 정체성”
김성은

로마서 8:31-39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정체성’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아마도 학교에서 뭐 ‘청소년기는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이다’라는, 다소 딱딱하고 교과서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오셨을 겁니다. 단어 자체도 뭔가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좀 지겹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전 여러분들을 데리고 꼰대같은 훈화 말씀을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뭐, 전도사님이 하는 ‘설교’라는 게 좀 여러분들에겐 그렇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는데요, 저는 연애하면서, 남녀간에 다리를 놔주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때에는 민들레 생활을 오래 했었는데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7년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교회의 한 아이를 짝사랑 했었고, 고2때 그 친구랑 302일 사귀고 헤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뭐, 우리 와이프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편단심 민들레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친구들 사이에서는 소위 ‘안전빵’이 되었었지요. 그러니까, 연애 상담을 하거나 다리를 놓는 작업질을 같이 해도, 어쨌든 저는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문제 생길 일 없고 안심인거죠. 뭐, 그런 생활도 오래 하다보니, 노하우도 쌓이더군요. 한번은 여자 친구(여자사람친구)가 찾아왔습니다. 편의상 ‘윤지혜’라고 합시다. (요즘 ‘브레인’, 아, 진짜 재밌죠?ㅋ) 그리고는 제 친구 중 하나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 친구 어떤 것 같냐고 물어보더라구요. 그 친구를 편의상 ‘이강훈 선생’이라고 칩시다. 저는 이제 솔~직ㅋ하게! 아주 소올찍하게! 우리 이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죠. 우리 이선생, 좀 싸가지는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상당히 괜찮은 놈이다, 속도 깊고, 남자인 내가 봤을 때 진짜 좋은 놈이다. 넌 이강훈 선생이랑 사귀어야만 한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사실은 윤지혜가 제게 상담을 받기 전에 전 이미 이강훈 선생과 엄청난 작업들을 미리 해뒀다는 건 뭐 꼭 굳이 꼭 이야기할 필요가 뭐 굳이 없잖아요? 그런 식으로 여러 커플들을 잘 만나게 해주었지요.

‘설교’라는 걸 하다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윤지혜가 이강훈 선생과 커플이 되게 하기 위한 그 많은 이야기가, 사실 상당히 설교하는 것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윤지혜에게는 좀 뻥이 많이 섞여 있었고, 이강훈 선생도 사실 그렇게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다는 차이가 있긴 하죠. 암튼, 오늘 이 설교도, 여러분과 하나님을 연결시켜주기 위한 제 ‘작업’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생각보다 꽤 괜찮은 분입니다잉~ 꽤 훈훈하고 또 상당히 쿨해요잉~ 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잉~ 뭐 이런 이야기가 결국은 제 설교의 대부분입니다. 꼰대 같은 훈화 말씀 같이 들린다면, 제 부족함이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좀 잘 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
오늘은 여러분과 여러분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는데요, 커뮤니케이션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 자기와 자기가 스스로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을 ‘inner communication’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나하고 대화한다는 거죠? 주의할 점은, 남들 보는데서 크게 소리내서 혼자 대화하고 그러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되죠. 혼자, 속으로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게 좋을 겁니다잉~ 암튼, ‘관계’라는 건, ‘나’와 ‘나’ 사이의 관계도 포함된 관계라는 겁니다.

이런 자기와 자기가 나누는 대화에서는 여러 가지 내용의 이야기가 다뤄지는데요, 비슷한 것들을 추리고 추리다보면 사실 가장 많이 다뤄지는 주제가 바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정체성이란 건, 어렵지 않아요~ 정체+성이죠, 그러니까, 니 정체가 뭐냐는 겁니다. ‘자기정체성’이라고 하면, ‘내 정체가 뭐냐’는 거죠. ‘나는 진짜로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정체성’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진짜로 누구세요? 뭐, ‘나는 나’죠. 근데 그 ‘나는 나’라고 말하는 존재인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냐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진짜로 누구세요?

‘나는 진짜로 누구인가?’라는 이 물음에 대해 대답이 될 수 있는 것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가진, 내가 소유한 것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대답하려는 게 있습니다. 이걸 두고 좀 어려운 말로 ‘소유가치’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그냥 내가 존재하는 그 자체로 내가 누구인지를 대답하려는 게 있구요, 이것 역시 좀 어려운 말로 ‘존재가치’라고 합니다. 좀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뭐, 부천인들은 지적 수준이 초큼 뛰어나잖아요. 그쵸?

많은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가’의 대답을 소유가치에서부터 찾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내가 누구인지가 결정된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내가 ‘못’과 ‘망치’를 가지고 있으면, ‘나’라는 사람은 ‘못을 박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죠. 컴퓨터 자격증을 가지면, 나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 되는 거죠. ‘높은 성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와 같은 ‘소유가치’는 대체로 상당히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나름 소유가치를 잘만 사용한다면 좋은 면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유가치의 문제는, 사람마다 ‘소유’가 각각 다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사람의 가치 역시 모두 다 다르게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뭔가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더 좋은 걸 가진 사람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거고, 반대의 경우는 덜 가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즉 소유가치는 소유를 통해 우리 본연의 존재가치를 흉내내보려고 하는 거죠. ‘사람’이라는 가치보다, ‘소유’가 더 중요해진다는 거죠. ‘사람’의 가치는 ‘소유물’보다 낮아지는 겁니다.

이러한 ‘소유가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들에게는, 자신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란, 더 많고 좋은 것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가 뭔가를 ‘소유’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요. 또한 ‘소유’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는 게 ‘소유’입니다. ‘높은 성적’을 가지고 있으면 참 좋겠지요. 근데 그 높은 성적, 순식간에 떨어지기도 하는 게 인생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이 ‘높은 성적’이라는 소유가치에서 찾는다면, 만일 성적이 떨어지는 날에는 ‘나 자신’ 역시 무너지게 됩니다.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괜히 자살을 하는게 아닙니다. 그들에게 무너진 건 단지 ‘높은 성적’만이 아닌, ‘그들 자신’이었거든요. 그 성적에서부터 자신의 가치를 찾고 있었거든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요즘 뉴스에서 이슈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노스페이스 등골브레이커들의 등장입니다. 패딩을 소유하는 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거죠. 뭐, 입고 싶다는 데 굳이 말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근데, 만일 여러분이 노스페이스 브랜드나 등급에서부터 여러분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면, 그건 정말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왜냐면 여러분들은 노스페이스 가장 높은 등급이 되었든 천만원짜리 옷이 되었든, 그것보다 여러분들은 훨씬 더 가치있는 존재들이거든요. 겨우 옷때기 하나로 평가받고 거기에서 가치를 부여받고 할 만큼 여러분들은 싸구려가 아니거든요. 그게 1억짜리, 10억짜리, 100억짜리 옷이라 해도 말이죠.

그거 아시나요? 뭐, 교회에서 매번 자주 얘기하는 건데, 우리는 죄인이래요. 이런 저런 죄를 지었대요. 그리고 그 죄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거죠. 그래서, ‘안되겠다,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야, 너도 나에겐 참 귀중한 존재이지만, 쟤네들이 저렇게 죽게 놔둘 순 없어. 미안하지만, 쟤들을 살리기 위해 네가 대신 쟤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어줘야겠다’ 하신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거죠.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선택’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소중한 걸 선택하기 위해 하찮은 걸 포기하시나요, 아니면 하찮은 걸 선택하기 위해 소중한 걸 포기하시나요? 당연히 더 소중한 걸 선택하기 위해 하찮은 걸 포기하죠! 하나님도 마찬가지였죠. 우리는 자주 ‘예수님짜리’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실상은, 그렇게 표현하기 좀 죄송하고 불경스러운 것 같아서 그렇지, 사실은 하나님에게 우리는 예수님보다 더 값진 존재입니다잉~ 물론, 그렇다고 예수님이 ‘하찮은’ 존재라고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잉! 하나님이 자기 아들인 예수님을 포기하면서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존재가 바로 ‘우리’였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존재가치가 있고, 우리가 ‘진짜로’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 있습니다. 즉, <‘내’가 보는 ‘나’는 누구인가>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나’는 누구인가>에 우리의 정체성의 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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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세상은, 우리의 소유를 통해 우리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라고 요구합니다. 입증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소유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치에 있다는 겁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근데 그 바로 앞에 나와있는 말씀이 압권입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즉, 내게 아무런 소유가 없다 해도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 근거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라는 겁니다. 예수님보다 우리를 더 귀중하게 여기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소유가치와는 상관없이, 그 존재만으로도,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즉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라는 겁니다. 무엇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는 ‘진~짜로’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고, 이것이 곧 ‘복된 소식’, 즉 ‘복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찬찬히 한번만 읽고 말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성경 좀 가져오시고, 성경에 밑줄이나 낙서도 좀 하고 그러세요.)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 이나 위험이나 칼 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
그러나 , 이 모든 일 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하나님’에게서 찾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를 똑바로, 제대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정말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예수님보다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믿으십니까? 정말로 믿으십니까? 그 하나님의 사랑이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믿으십니까? 때로는 믿기 힘들어질 때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니까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놓치지 않으실 거거든요.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거든요.

이 사회에 자살 소식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 소식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어떤 것에 의지하게 되면, 그것이 무너지는 날에는 여러분도 무너지게 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너지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조금만 더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보세요. 조금만 더 하나님께 집중해보세요. 느껴지실 겁니다. 좋은 기회가 있네요. 얼마 안 있어 수련회가 있지요. 한번 하나님과의 긴밀한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사랑을 느끼실 수 있다면, 여러분은 모든 일을 넉넉히 이기게 될 겁니다.


V/R,

Kim, Sung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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