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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연애 막는 교회





2014년 1월 27일 페북에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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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좋은 카페에 드립 커피를 시켜놓고 공부를 하는 '된장질'을 하고 있다.

대각선으로 보이는 자리에 커플이 마주보고 앉아 있는데, 그 중에 남자가 내 쪽을 보고 앉아있고, 여자는 등을 지고 앉아있다. 남자 목소리가 적당히 굵은데다 알맹이가 있고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있어서 그런지, 뭔가 목소리가 큰 건 아닌데 내 귀에까지 선명하게 전달된다.

뭐, 엿들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갈등이 있는 것 같다. 여자는 교회에 열심인듯 하고, 남자는 교회에 다니지는 않는 것 같다. 남자가 조곤조곤 자신의 힘든 부분을 얘기한다. 분명히 자기가 여친이 있는 사람인데, 주말이 되면 여친이 교회에 가 있느라 만날 수가 없다. 겨우 월요일 퇴근하고나서 만났는데, 이젠 또 수련회에 가야 한단다. 교회 다니는 건 좋은데, 자기를 너무 외롭게 만들지 말라고 한다. 여친은 등지고 있는 상태라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안들리는데 크게 반박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남자는 나름 부드럽게 자신의 입장을 얘기하고 있고, 여친은 뭔가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남자의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자존심상할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여자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청년 사역할 때 계속 고민되던 지점이었다. 지금까지의 사역 구조 안에서는 리더십들이 주말에 교회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이것들이 나가서 연애할 시간이 없다. 연애를 한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갈등 상황을 자주 겪게 된다.

자고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눈에 보이는 타인에 대한 애정과 신뢰와 기대에서부터 구조지어지는 법인데, 어쩌자고 우리네 한국교회는 젊은이들의 애정전선을 이토록 위태롭게 만드는지. 이를 놓고 나름의 고민을 했지만 뭐라 뾰족한 수가 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새로운 구조와 모델이 필요한 문제일는지도..

아마 남자는 자신의 응어리 - 아마 꽤 오래된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꾹 눌러담았던 것 같다 - 를 풀어놓았다는 점에서만이라도 마음이 많이 풀린 듯 하다. 목소리가 훨씬 나긋나긋해졌고, 살짝 자학 - 이를테면, '내가 못나서 그렇지' 라든지 - 도 감행한다. 이쯤 되니까 여자도 조곤조곤하지만 통찰력 있어보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나눔' 내공을 시전한다. 역시, 교회자매들은, 나눔과 설득에 대단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젠 주위 다른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커지고, 이 남녀의 목소리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작아져서, 뭐라고 대화하는지 들리지가 않는다..... 아.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인데, 이 남자의 목소리가 자꾸 귀에 꽂히는 바람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다시 된장남 집중 모드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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