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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공부하다 전병욱논쟁 및 고지론논쟁 관련한 단상




2012년 6월 20일에 페북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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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쌩으로 남아있는 페이퍼가 두 개. 학교 도서관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긴 하나, 구식이 되어버린 노트북의 발열 때문인지 전혀 시원하지가 않다. 이럴 때일수록 공부는 안되고 잡생각만 난다.

1. 7월 9일 논문학기 이전의 종합고사가 있다. 이 말인 즉슨, 페이퍼 두 개를 완성해놓고도 계속 공부를 해야한단..

2. 다음주 화요일 교육부 간사들과의 당일치기 MT(? 소풍?)가 있다. 음.. 어디로 갈꺼나?

3. 전병욱 목사에 대한 언급이 페북상에서 계속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주된 반대논지는 '그는 회개하지 않았다'이다. 이런 childish한 논지는 찬성파에 의해 바로 반박될 수 있을만한 수준이다. 한 사람의 회개 문제를 놓고 서로 아전인수식으로 갑론을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찬성쪽이든 반대쪽이든 그냥 '내가 보기 싫다'고 해라. 자꾸 하나님 갖다붙이지 말고. 찬성쪽에는 '성숙'을 기대하기가 좀 힘들어 보이니, 반대논지가 좀 더 '씨알'이 먹히는 방향으로 elaborate되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 반대논지는 정작 당사자인 '피해자'에게 너무 폭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찌라시'적인 입장마저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르크'는 옳았던 듯 하다.

4. 또 한편으로 '고지론'과 관련한 계속되는 논쟁이 있는 듯 하다. 이른바 '고지론' vs '저지론' 또는 '미답지론'. 이와 관련된 논쟁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양자는 사실상 같은 이야기라는 점. 과거 이성론자들과 경험론자들의 논쟁이 칸트 안에서 정리된 것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둘째, 이쪽이든 저쪽이든 둘 다 '체계'를 세운다는 점에서 오류다. 하나님은,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결코 체계 안에 갇혀있지 않다. 하나님을 나의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체계의 주조자인 '나'는 하나님을 이언령 비언령 할 수 있는 절대자의 권위를 갖게 된다. 그러나 본회퍼가 말했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앎'의 체계 안에 싸잡혀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인간의 체계를 벗어나신다(escape)! 고지론이라는 체계로만 하나님과 세상을 보는 것도, 그 반대의 체계로 하나님과 세상을 보는 것도, 본회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건 여전히 '나'이지,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이유로 '고지론'도 '미답지론'도 여전히 유효하다. 단 그것이 임의적 해석일 때에만 가능하다.

5. 아. 왜 이렇게 폭풍 글쓰기를 했을까... 는 현실인식에, 덧붙일 말, 보완할 말 싸그리 놔두고 걍 다시 페이퍼로 돌아간다. 이번에 쓸 페이퍼는 미하일 바흐친의 '대화론'을 가지고, 과연 우리와 성서텍스트 사이의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선교학' 과목에서 이런 주제로 신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즐거..... 아,, 걍 학기 끝나고 다시 이야기해야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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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 내가 남긴 글 (1)



수정: 3번의 맨 처음에 나오는 '반대논지'를 '반대논거'로 정정해얄듯요.ㅋㅋ

한줄요약씨리즈
3. 홍대새교회관련 반대세력님들, 좀 잘좀 합시다잉.
4. '고지론' vs '미답지론' 관련해서, 자꾸 무의미한 일에 목숨걸지 맙시다잉.

이 되겠습니다. 창서형 말대로 현재 '멘붕' 중이므로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음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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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 내가 남긴 글 (2)



조금 더 성의있는 덧붙임말

1) 3번에 대해서는 현재 항간에 진행되고 있는 전병욱 목사 교회 개척 움직임과 그에 대한 '반대'세력의 반대 입장에 대해, 4번에 대해서는 김동호 목사님의 '고지론', 그리고 대형교회 담임목사에서 초대형교회 담임목사로 갈아타신 목사님의 취임사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어느정도의 선이해가 있어야 좀 더 수월하게 읽히실 듯 합니다. 전반적인 배경에 대한 안내가 없었던 점, 그리고 저만 알아듣게 휘갈겨쓴 점,, 죄송합니다잉.^^;

2) 전병욱 목사 반대세력에 대해 굳이 '반대'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그들의 논거와 논지가 '비판'적이라기엔 너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그럼에도 전 '반대'세력의 비판적 옹호자입니다. 기대가 없으면 비판도 아깝습니다. 이번 통진당 사태를 보면서 진보가 멍청하면 독이 된다는 현실을 직시한터라, 이왕 나선 반대론자들의 논거와 논지가 좀 더 성숙한 차원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현재까지의 반대론자들의 성명서와 행보의 방향성에는 너무나도 쉽게 '거부'될만한 비판지점이 꽤 있습니다. 지금 이 상태로 대결구도가 이루어지면 곧바로 통진당 꼴 나게 생길 것 같아서 말입니다.

3) 현재 전병욱 목사의 성추문의 진실을 밝힌다는 자료들이 서로 자기가 '원본'이라고 떠들고 있고 그 원본으로서의 '아우라'적 권위를 주장하려고 하고 있지요. 그러나 실상은 '원본'인 척 하는 '복제물(시뮬라르크)'이 판치는 형국입니다. 물론 그 복제물 안에 '사실'이 담겨있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원본이 아니라 복제물일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각자의 목적에 의해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본의 진짜 문제인 '피해자'의 문제는 이미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고, '하나님'의 문제를 끌어다가 '목회해도 된다', '하면 안된다'를 외쳐대고 있으니, 이거야 말로 기술복제시대에 '짜가가 판치는' 형국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 제가 보드리야르를 언급한 이유가 있는데... 구차한 변명이 더 헷갈리게 해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4) 공부에 집중이 안되서 후려갈긴 '잡생각'.. 그냥 다음 주까진 뭐해야 된다, 그 다음주엔 뭐해야 된다.. 그런 얘기를 소소하게 하려 했는데... 흙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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