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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개독극장




2013년 12월 27일, 개독극장 직전날에 페북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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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중고등부는, 예전에 모든 교회가 했었던 '문학의 밤' 같은 연말 발표회를 한다. 왜, 예전엔 '싱어롱'에, 시낭송에, 꽁트에, 중창에, 성극, 그리고 전체 합창으로 마무리되는.

내가 부임하기 전에는, 아이들끼리 복작복작, 사회자 두 명이 나와서 이번 순서는~ 다음 순서는~ 하면서 진행되었던 것 같다. 근데 이녀석들, 수준을 보니 아무래도 그 구성은 재롱잔치 수준일듯 싶었다. 차라리 근사하게, 처음부터 끝까지를 하나의 내러티브 안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는 뮤지컬처럼 하자 하니, 처음에는 이것들이 생각하던게 있었는지 소심하게 반항하더니, 이내 근사한 큰 그림에 홀딱 넘어왔다.

전체 컨셉을 짜기 이전에 이미 분과별로 연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보통 CCM, CCD, 꽁트, 뮤직비디오 패러디, 무언극 등등을 했었단다. 분과별로 미리서부터 지들이 하고 싶었던 곡 or 내용들을 이미 결정해놓고 연습에 들어가 있었던 상태. 정해진 곡들을 가지고 전체 구성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 녀석들, 연습보다 실전에 너무 강했고, 정말 멋진 무대였다. 그 무대에 너도 나도 이끌렸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이 때의 주제는 "이끌림".

올해는 컨셉과 구성을 미리 잡고 시작하자고 했다. 중고등부 임원들이 모여서 전체 주제를 한번 잡아보라고 던져놓았더니, 이것들이 자신감 있는 얼굴로 가져온 주제는 "하나님은 존재하는가?"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그 복잡다단하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주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며, 또 그걸 어떻게 극으로 표현할 것인가? 극으로 표현한다 하더라도 그게 중고딩들 입맛에 재밌을 것인가? 거참, 대책없는 녀석들이 따로 없다.

분과별 연습이 후끈 달아올라야 하는 9월과 10월을, 기획팀을 조직해서 계속 컨셉회의를 하느라 다 보냈다. 때로는 기획팀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서 교회 안다니는 애들한테 물어보고 오는' 숙제도 내줬고, 화이트보드를 꽉꽉 채우면서 토론하기도 했고, 답답하게 시간을 까먹기도 했다. 힘내라고 맛있는 것도 먹이다가도, 정신 안차리냐고 혼구녕을 내주기도 했다. 그 끝에 '개독극장'의 밑그림이 그려지게 되었다.

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보려고 해도 자꾸 태클거는 수많은 '개독교인'들, '개독교 먹사'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너도 개독이냐?"는 소리가 그렇게 무서울 수 없단다. 그리고, 사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그' 개독들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역시 '개독'일 수 있겠다 싶단다. 옳다. 사실, 정말 비판받아 마땅한 특정한 '개독교인'들이 있긴 하지만, 사실 너도 나도, 개독교인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개독 극장'을 준비했다. '너도 개독이냐?'라고 묻기를 마지않는 이 시대에서, 그래도 이들이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남아있는 이유에 대해, 중고딩들이 나름의 대답을 던진다. 그래봐야 '개독교인' 취급을 받을텐데, 그래도 '기독교인'이고자 하는 이들의 응답이다. 불편한 진실, 그러나 불변할 진실.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다.

담당목사인 나는 아이들의 '물주', '시다바리', '오해풀기', '땜빵', '부탁하기', '정리해주기'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아. '욕해주기'도 담당했다. 특히 기획팀이 나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밴드팀은 전체 무대의 호스트 역할을 한다. CCD는 이제 '율동'의 수준을 넘어섰다. 두 차례의 랩팀은 찐득한 가사를 참 잘 썼다. 무언극팀은 창작을 했는데, 유튜브에 올리면 대박날 것 같다. 단편영화도 찍었다. 이번에 고생한 근수는 눈이 많이 높아질 것이다. 연기자들은 조금 더 욕을 먹어야 한다. 지용쌤의 고생은 빛을 발할 것이다. 이번 무대는 역대급일 듯 하다.

'개독극장' 포스터를 교회 곳곳에 도배를 해놓았다.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을 법한 2층에는 한쪽 벽을 포스터로 모두 채워놓았다. 처음에는 검은 바탕에 빨간 글씨로 '개독극장'을 흘겨 쓰는 방식으로 포스터를 제작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센스있게 '온화하게' 포스터를 제작해주었다. 그래도 교회 안에 '개독'이란 단어가 버젓이 붙어 있는 것이 못내 불편하셨던지, 여러 분들이 여러 모양으로 말씀을 나누고 가셨다. 아마 극을 보다보면, 그리고 우리 랩팀의 랩 가사를 좀더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 아니, 불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주시길.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기독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인터넷에서 '기독교'라는 단어가 보일 때마다, 훨씬 더 깊은 불편함에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 입에서 나온 맨 첫 컨셉, "하나님은 존재하는가?"는, 존재론적 유신론에 대한 아이들의 철학적 관심.. 따위와는 전혀 관계없다. 이 '불편함'을, 적어도 내적으로나마 해소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이다. 그리고, 이 극이 이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나마 대답되기를 바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는다. 일단 완벽히 '증명'된다면, 그것은 인간적 논리학 안에서 완벽한 것일 뿐, 그것이 곧 인간 외부의 세계, 즉 '신적인 것'을 담고 있으리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있다'라고 말하는 것에도, 또한 '없다'라고 말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 그것으로 끝이 나면 섭하지.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될 수 없다. 다만 '경험'될 뿐이다. 앎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그분의 임재가 엄습한다. 이번 무대를 통해, 우리 아이들은 '증명될 수 없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013년 12월 28일(토) 늦은 5시, 부천동광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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