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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목사안수식에 즈음하여.
2013년 10월 17일
목사안수식(2013.10.22)에 즈음하여 페북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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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공부가 안돼서 웃으려고 올렸던 글이 본의 아니게 목사 안수에 대한 홍보가 된 것 같아 좀 불편한 마음이 있습니다. 뭐 이렇게까지 된 거, 저, 다음주 화요일(22일) 오후 5시 고척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자,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덕분입니다. 축하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여러 고마우신 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관계로 참 조심스럽지만, 이 '축하'와 '격려'는, 제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결단한다는 데에 대한 만큼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직 '목사'가 안 되어보아서 이렇게 용감할 수 있겠지만, 저는 '목사'가 된다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보다 후행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전도사일 때에 는 아니었다가 목사가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평신도, 전도사일 때에는 아니었다가 목사가 되어야지만 '주의 종'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목사안수를 목전에 둔 저나, 이미 안수를 받으신 분들이나, 평신도분들이나, 모두 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이지 않겠습니까.
저에게 목사안수식은 다시 한번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죽기를 결단하는, 또 하나의 자리입니다. 결코 '신분상승'이거나 '승진' 정도의 의미여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신분상승'하려고 이 길을 걷는 것이 아니거든요. '목사'라고 불리우게 되었다고 자동적으로 더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전도사'라고 불리든, '목사'라고 불리든, 아니면 '야'라고 불리든, 결국 하나님과 저와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고, 또한 무엇이 되었든 그렇게 저를 불러주시는 여러분과 저와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안수식에 와주시면, 저야 참 감사한 마음이지요. 그러나 감사한 이유는 여러분들을 한번 더(혹은 오랜만에) '볼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지, '승진축하'를 해주셔서는 아닙니다. '승진축하'가 아닌 마당에야, 굳이 그 날에 맞춰서 먼 길을 오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저는 늘 해왔던대로 다시 한번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죽기를 결심하느라 오신 분들과 여유로운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차라리 다른 날을 잡아서 여유있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만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단 생각입니다.
이거 참, 오시려는 분들께 '오지 마세요'라고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면 안됩니다'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보잘 것 없는 저를 위해 와주셨다는 데에 참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일 겁니다. 한마디로, '환영!'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목사안수를 대대적으로 축하해주시면 축하해주실수록, 혹여나 제가 '목사'라는 타이틀에 소위 '자동적으로 거룩해지는' 대단한 의미부여를 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자격'의식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만, 이것이 제 교만함의 싹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도 제가 목사가 된다는 것이 그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죽기를 다시 결심하는 것' 이외의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매일 아침 일어나서 다짐하는 그 다짐을 또 반복할 뿐인데, 매일 아침마다 찾아오셔서 이를 축하하고 격려해주실 분들이 계시다면 모를까, 꼭 찾아오시지 않으셔도, 그저 계신 자리에서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다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오시는 분들을 위한 선물과 식사도 그리 많이 잡아놓지 않았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국민학교 5학년 때 정말 멋도 모르고 "나의 꿈은 목사님"이라고 책상 앞에 붙여놓았던 그 소박한 마음이, 구비구비를 돌고 돌아서 이제 결국 진짜 목사가 된다는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나님과 여러분들께 참 많은 은혜와 사랑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 자신을 채찍질 합니다. 목사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하여도, 그 타이틀을 받지 않음이 더 나았을 이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목사가 되었으니 꿈을 이루었다'는 것은 여지 없이 교만한 마음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또한 사실 오래 전부터 시작되어온 것 아니겠습니까.
신영복 선생께서는 '객관적 달성'의 위험함을 꼬집으셨지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죽으려는 '주관적 지향'이 제게 필요할 때입니다. 항상 부끄럽지만, 목사로서, 그리고 그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그 전에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가장 위대한 목사가 되는 것보다는 그저 또 하나의 진실한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완벽하게 홀리한 목사보다는 날라리 목사가 되어서, '거기에도 계시는' 하나님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기도해주신다면 참으로 힘이 될 것입니다.
Label:
[elaborated],
목사,
목사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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