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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오늘 아침 금요일은 9시까지 교회에 출근해야 하는 날이라, 아이돌보미하시는 권사님께서 8시에 오신다. 보통 아내는 7시 이전에 일어나 7시 30분 경에 출근을 하고, 그 중간 즈음에 일어난 봄이를 돌보는 일은 당연히 내 몫이 된다. 평소에는 권사님이 9시에 오시기 때문에, 평일에는 그 전까지, 금요일인 오늘은 8시까지 나는, 잠자는 동안 배고팠을 봄이에게 분유를 타서 먹이고, 축축해진 기저귀를 갈아준 후에 봄이를 내 배 위에 올려놓고 다시 잠을 청해준다. 그러면 어느샌가 봄이는 내 배 위에서 내 심장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에 든다.

오늘은 아내의 부산한 출근 준비에도 불구하고 봄이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봄이가 일어나기 전까지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아내는 출근하고, 아이돌보미 권사님은 아직 안오신 시간,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폰은 식탁 위에서 큰 벨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다급히 전화를 받으러 가는 내 머릿속에는 1)폰을 왜 이렇게 멀찍이 두었을까 2)진동으로 바꿔놓는 걸 왜 잊고 있었을까 3)설마 봄이가 깨는 건 아니겠지 4)차 빼달라는 전화인건가 등등의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최악의 조합은 3)+4)이었다. 봄이는 깼는데, 차를 빼러 나가야 한다니. 그 순간 들려오는 봄이의 울음소리. 그 순간 확인하는 전혀 모르는 핸드폰 번호. 전화를 받으니, 주차장이며, 지금 빨리 출근을 해야 하니 차를 빨리 빼달란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의 주차 문제는 인근 아파트에서도 최악으로 꼽힌다)

봄이는 우는데, 막 잠에서 깬, 내복만 입은 애를 데리고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옷입혀서 나가기엔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봄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드는 것 같았다. 그래, 저렇게 울다가 지치면 곧 다시 잠에 들지 않을까? 어차피 안방 문이 살짝 닫혀있으니 어디 왔다갔다 하면서 다칠 염려는 없겠지? 생각하고는 최대한 차를 폭풍처럼 빼고 올 심산으로 차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나가보니, 내 앞에도 차가 있었고, 아직 차들이 덜 빠져서인지 마땅히 세울 데가 없어서 그다지 '폭풍처럼' 빨리 빼진 못했다. 예상보단(and 평소보단) 좀 더 걸린 것 같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좀 안심이 된다. 봄이가 울고 있다면 현관에서 이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도 봄이 우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 소리가 안들린다. 아. 다시 잠에 든 모양이구나. 다행이다.

현관 문을 열었다. 섬뜩? 한 느낌이 들었다. 닫혀져 있어야 할 안방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부엌 쪽에서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난다. 아하. 권사님이 오늘은 좀 일찍 오셨나보구나. 아직 오실 시간이 아닌데.. 그 순간 다다다다 소리가 난다. 봄이가 길 때 나는 소리다. 부엌에서 나온 이는 봄이뿐, 권사님은 아직 안 오셨다. 두려움 서린 눈을 하고는, 소리가 나는 현관문쪽으로 기어나온 것이었다. 봄이가 식탁 즈음에서 나를 발견했다. 눈물 콧물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한참을 울어도 찾아와주지 않는 아빠를 찾으려고 울음을 잠시 멈추고 안방 문을 열고 집안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던 것이다.

이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 지 아빠인 걸 확인하고는 그제서야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처음 현관문을 열었을 땐 듣지 못했던, 봄이가 스스로 아빠를 찾겠다고 멈추고 있었던 그 울음을 그제서야 으앙~ 하고 터뜨렸다. 안아달라고 손을 뻗지도 않았고, 그냥 기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그 작은 무릎에 손을 의지하고는 졸였던 맘을 맘껏 발산하기라도 하는 듯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얼른 봄이를 안고 달래주는데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른다. 서러운 울음때문에 그런건지, 무서웠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봄이는 한동안 내 품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여린 팔로 초보 아빠의 목을 꽉 안고 작은 손으로 아빠의 옷을 떨어질세라 꽉 잡고 있었다. 그 팔과 손을 통해서 봄이의 떨림이 나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어찌나 황망하고 미안한 마음이던지. 얼마 안 살았지만, 인생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 일이 있은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봄이의 표정과 자세, 떨림, 상황 등등이 아직도 눈에 선하게 남아있다. 아. 눙무리 날꺼 같애.. 봄이야. 아빠가 더 잘할께.ㅠㅠ (물론 분유를 타서 주니 봄이는 금방 진정이 되었다.)



무슨 느낌이었을까. 봄이를 안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찰나에 느꼈던 그 느낌과 감정은, '언어'라는 상당히 유용한 표현의 도구로도 도무지 뱉어낼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게 '부성애'인가? 만일 그렇다면, 기대와는 좀 다른 것 같다. 그 황망하고 미안하고 스산하고 엄습하는 듯한 그 느낌을, 뭐랄까, 단지 '부성애'라고 넘겨짚는 건 좀 억지인 것 같다.

오히려 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을 맞닥뜨린 것 같다. 하나님의 진심과 조우한 순간. 칼 바르트가 말했던, 원과 직선이 접선한 것과 같은 그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으로 경험되는 그 순간.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뭔가 정해진 형식으로서 결론내리긴 어렵고,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예수님의 마음이 아주 조금이나마 느껴진 것 같다.




ps. 빨리 봄이를 보러 가야겠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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