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List
2015-03-20
이 시대에 날라리가 필요한 이유.
이지명, <<넘쳐나는 민족 사라지는 주체>>, 12-13.
"학교에서는 1년 동안 학급을 이끌어가기 위해 '급훈'을 정해 교실 공간에 게시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필귀정, 일일일선 같은 도덕적 구호들이 게시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몸에 익숙한 세대의 감성과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참신하고 정서적인 구호들이 많다. 예컨대, '꿈은 이루어진다', '흔들릴수록 꿋꿋한 나무',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 '새벽은 새벽에 일어난 자만이 볼 수 있다', '장미를 얻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장미 가시에 찔리지 않을 수 없다' 등이 그렇다.
이러한 구호들은 구체적이고,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행동을 전제한 문구들이다. 그것의 선동력은 언제나 문장의 명시적 의미를 넘어선다. 따라서 담론 분석자는 이러한 구호의 순수하고 이상적인 관념성을 의심하게 된다. 그들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교실이라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그 말 속에 스며 있는 억압과 동원 그리고 체념의 이데올로기적 그림자를 감지한다. 즉 이러한 구호들은 학생들이 3년 동안 겪게 될 실제적 난관을 호도하고, 그들을 기성세대가 희망하는 곳으로 안내하기 위한 기획적 담론이라는 것이다.
사실 학교는 학생들이 저항감 없이 현실 조건에 순응하여 인생을 잘 헤쳐 나가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구호를 게시했을 터이다. 하지만 담론 분석자의 시각은 다르다. 비전 제시라는 목표 뒤에 숨어있는 그것의 구조와 이차적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이데올로기의 아이러니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압당하는 주체가 오히려 그것을 지지한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일상 속의 구호에 스며 있는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벗겨내는 작업 또한 도식적 사고의 전형일 수 있다. 사회적 통념에 대한 비판이 또 하나의 통념이 되어버리는 역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같은 통념적 연쇄 사고의 가면을 벗겨내 그것이 우리의 자율적 사고를 어떻게 방해하고, 소외시키고, 그럴듯한 미명 아래 발화 주체를 어떠한 방식으로 제한하는지를 추적해보자. 이는 바로 의식의 해방을 의미한다."
======
이 시대에 날라리가 필요한 이유.
Label:
[elaborated],
날라리,
넘쳐나는 민족 사라지는 주체,
이지명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