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List

2015-03-24

신해철에게 진작 하지 못해 미안한 사과.





(2014/10/28 11:24 블로그 작성)



가수 신해철이 어제 작고했다. 평소 신해철을 매우 좋아했거나 혹은 그의 노래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의 노래 중에 아는 것이라고는 '날아라 병아리, '해에게서 소년에게', 'Lazenca, Save us', '일상으로의 초대'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더 늦기 전에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고딩즈음까지 나는 더욱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소위 '세상 노래'에 대한 혐오감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부터 그것이 '혐오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거룩한 거절' 혹은 '영적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이 인식론적 지위가 나의 혐오감을 합리화했다. 그 때문에 서태지라든지 어제 작고한 신해철을 비롯한 신씨 가문 음악가들의 노래에는 더욱 특별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백워드마스킹'이라는 기법을 사용해서 사탄의 메시지를 집어넣었다든지, 그들이 사실은 악마를 숭배하기로 결의했다든지 하는 여러 이야기들은, 세상을 배타하고 하나님에게만 신실하려 했던 나에게는 물기 좋은 떡밥이었다. (게다가 신해철은 '마왕'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하여, 난 서태지라든지 신해철 등의 노래를 '악마의 노래' 정도로 생각했고,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영혼이 오염되는' 것 같이 느꼈으며, 교회다니는 친구들 중에 이들의 음반을 구매한 친구들을 흘겨보고 정죄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나 스스로의 정결성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아마 고딩때 교회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다. 나름 노래 잘한다는 애들이 있긴 하지만, 귀가 높은 편이라 별로 성에 차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노래들이 이어져오는데, 전주부터 내 귀에 착 감기는 노래가 나왔다. 별 볼일 없는 친구의 보컬과 그 이상한 노래방 반주에도 불구하고 '노래 자체'가 정말 좋았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라고 한다. 그 곡이 신해철의 곡이란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온 몸에 소름이 나고, 왠지 이상한 소리가 녹음되어 있을 것 같고, 뭔가 프리메이슨의 표식이 있을 것 같았다. 왠지 악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친구들은 '성은이가 좋아한다!'라며 넥스트의 또다른 곡을 불러주며 좋아했지만, 겉으로는 웃는 낯짝에 속으로는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에 대한 여러 어두운 소문들이 근거 없는 '음모론'적 낭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신앙이 결코 '세상'을 배타하는 것이 아닌 최소한이나마 '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이들의 음악을 편견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문자 그대로 '정말 좋은' 음악들이었다. 이렇게 좋은 음악들을 청소년기때에 멀리했던 것이 나 자신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리고 나의 편협함이 결국엔 하나님을 편협하게 만들었단 생각에 하나님에게도 죄송했다. 하나님이 문자 그대로 "세상을 사랑"(요3:16)하셨다면, 오히려 하나님은 이들의 창조성에 기뻐하셨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음악을 정죄함으로 나 스스로의 정결성에 탄복하였으나,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의 열심이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인식론이 작위적으로 구조화시킨 '거룩'과 '세속'의 경계를 넘나들고 허무시는 분이었다.

얼마 전 서태지의 옛 노래를 들을 때에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아. 그들이 나름의 최선을 다해 만든 음악들을 혐오했던 내 과거의 모습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반성하지 못했구나. 서태지와 신해철에게 사과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나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정죄하고, '거룩'과는 거리가 먼, 아주 천박하고 지하세계의 산물로 치부하였는데, 그들의 음악과 그 음악에 담긴 그들의 열정과 인생을 음미하는 지금까지 그들에게 사과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간의 중태 끝에 신해철이 작고했다. 사과할 기회는 널려 있는 줄 알았는데, 다시 한 번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실한 성도'에게는 금지어와 같이 여겨지는 그의 별명을 부르며 사과하고 싶다. "마왕. 정말 미안했습니다. 나의 맹목적 무지함과 맹종적 열심이 만나 당신을 악마로 정죄해왔던 내 과거에 대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내 생각은 결과적으로 나의 하나님마저 반쪽짜리로 만들어놨다는 점에서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올바르지 못했고, 그 결과로 당신에게도 올바르지 못했습니다. 사후의 삶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 단지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주권에 달려있음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당신에게,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작 사과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서태지에게도 동일한 의미로 사과의 마음을 전하며.. 내가 이들에게 보다 진정성 있게 사과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아마도 그들의 음악을 오해와 편견 없이 그 속에 녹아진 그들의 열정과 인생을 음미하는 일일 것이란 생각에, 아래의 기사를 가져왔다.

==

링크: [허핑턴포스트] "'마왕' 신해철이 남긴 10곡의 '작품' (동영상)"

http://www.huffingtonpost.kr/2014/10/27/story_n_6053860.html?&ncid=tweetlnkushpmg00000067




No comments:

Post a Comment